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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디자인과] 천재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

패션디자인과 학생이라면 누구나 한명쯤은 자신의 롤모델인 디자이너가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영국이 낳은 천재 디자이너로서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삶을 마감한 알렉산더 맥퀸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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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1969.3.17~2010.2.11)

패션으로 강렬한 감정을 유발하는 전위적이고 낭만적인 설치/행위 예술가

알렉산더 맥퀸은 대중 앞에 나서기를 극히 꺼리는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그는 새로운 사람과 사귀는 것을 극도로 어려워하는 성격이었으나, 누구보다 인간의 근원적인 존엄성에 관심이 많았다. 어떻게 보면 전통적인 관점에서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 맥퀸의 많은 디자인들은 궁극적인 인간의 존엄성을 탐구하는 디자이너의 노력의 결과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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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출생 런던 남쪽의 루이셤(Lewisham)에서 택시 기사인 아버지 아래 태어난 알렉산더 맥퀸.
 
맥퀸은 영국 런던의 최고급 맞춤 양복점의 본산인 새빌 로(Savile Row)에 견습생이 부족하다는 신문기사를 본 어머니의 권유로, 16세에 학교를 떠나 디자이너의 꿈을 안고 Cornelius O’Callaghan(코트 전문 테일러숍)에서 견습생 일을 시작했다. 일이 손에 익게 된 이후로는 점점 지루해하기 시작하여, 영국 왕세자가 입을 재킷의 안감에 외설스러운 말을 낙서해놓기도 했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실제로 발견된 것은 없다고 한다. 이 시기는 맥퀸이 표현적ㆍ예술적 재능을 계발할 수는 없었으나, 디자인의 밑바탕이 되는 재단 기술과 테일러링을 습득하는 중요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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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맥퀸이 영국 패션계를 중심으로 디자이너로서의 정체성을 인지시킨 이 즈음에 또 한번의 중요한사건이 일어났다. 1996년 패션계의 거대 기업 LVMH가 정체기에 빠진 지방시 하우스를 구제하기 위한 구원투수로 27세 신예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을 지목했던 것이다. 맥퀸의 지방시 컬렉션에 대해서는 평이 엇갈렸다. 맥퀸의 지방시 시절에 대한 평이 엇갈렸다는 사실이 말해주듯, 이 시절의 경험은 맥퀸이 지방시에 많은 공을 세웠다기보다는 알렉산더 맥퀸이 독립된 디자이너로서 성장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알렉산더 맥퀸은 지방시와 결별한 후, 자기 레이블에 집중하였고, 2001년 “The Dance of the Twisted Bull” 컬렉션으로 파리 무대에 데뷔하며 또 한번 패션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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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패션디자인과 학도나 패션에 큰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 알렉산더 맥퀸의 컬렉션은 다소 난해하고 아름다움과는 동떨어질수도 있다. 알렉산더 맥퀸의 쇼는 명확한 컨셉이 있다. 그는 철저하게 쇼를 패션을 매개로하는 표현의 수단으로 사용했다. 다른 어느 디자이너의 쇼보다도 맥퀸의 컬렉션을 그 이름과 함께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알렉산더 맥퀸은 영화, 자연, 미술, 역사 등 다양한 소재를 영감으로 작품 세계를 창조했다.

맥퀸은 2010년 자신의 센트럴 런던 지역의 자택에서 자살했다. 목을 매달아 숨을 끊었는데, 아직 사인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자신의 트위터에 남긴 메세지를 통해 추정할 수 있는 것은 며칠 전 엄마으 죽음 이후 극도의 우울증에 의한 자살로 보여진다. 알렉산더 맥퀸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작품들은 아직까지도 패션계에 큰 획을 그으며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불어넣고 있다.